《불균형에서 오는 퍼텐셜 에너지》는 이질적인 요소들 사이에서 새로운 형태가 창조되는 양상을 바라보며 기술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소통 가능성과 관계 맺음을 모색한다. 예술은 어김없이 기술의 시대에 잔물지어 시대를 읽어내는 대상과 인식의 문제를 동시대적으로 갱신하고 있다. 질주하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출현한 낯선 실재들에 적합한 새로운 사유의 언어가 필요한 현시점이다. 기술이 ‘독’이면서 ‘약’으로 기능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기술과 상호 공존하는 인간의 삶을 향하여 새로운 방식의 소통과 정서적 공명의 관계는 어떻게 동행이 되어야 할 것인가. 전시는 근대적 예술 개념과 관습적 장르 구분에서 벗어나 동시대 예술의 다원성을 대변하는 다섯 점의 융합예술작품을 소개한다. 작품은 작가의 상상력에 각각 다른 ‘자연’과 ‘기술’의 요소가 혼종, 변형의 방식으로 가미되어 전시 안에서 하나의 독특한 존재로 자리한다. 전시 안에서 작품은 다른 작품과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긴장된 앙상블을 형성하고 작품에 내재하는 잠재성은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한다. 이질적인 작품들이 하나의 앙상블로 변조되어 가는 관계 맺음이 유의미한 기술미학적인 가치가 될지, 무의미한 소음이 될지는 작품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의 양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전시 안에서 서로 다른 것들이 모였을 때 불시에 솟아나는 퍼텐셜을 상상해 보며, 작품 속에서 기술성이 내포하는 양식에 대해 재고하고자 한다.
물리학 이론에서 일컫는 ‘준안정상태’는 안정된 상태도 불안정한 상태도 아닌 그 어느 경계의 상태이다. 언제 다른 상태로 전환될지 모르는 이 긴장된 상태에서 어느 순간 불균형이 생기면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가 생긴다. 안정되거나 평형된 상태가 아니기에 변형될 잠재성이 기저에 깔려있고, 내부에서 비대칭적인 두 극단 사이에서 에너지 교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균형에서 오는 퍼텐셜 에너지》는 일종의 준안정상태이다. 전시 안에서 작품은 기술과 자연, 인간과 기술,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 같은 이분법적 개념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관계성과 혼종적 주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계를 함축한다. 이에 따라 전시는 서로 다른 작품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환원할 수 없는 새로운 상관성 구조를 창발한다. 전시는 변화와 생성의 잠재적 역량에 해당하는 퍼텐셜 에너지로 가득 찬 상태로 긴장의 상관관계 속에서 불연속적인 도약과 연속적인 자기 보존의 준안정성을 유지한다.
《불균형에서 오는 퍼텐셜 에너지》는 서로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며, 관계의 연결망을 확장하는 사유를 고찰한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총 다섯 점의 작품은 자신의 개별적인 구조와 방식으로 자연과 기술 그리고 인간 사이에서 솟아나는 생성과 변화의 이야기를 전한다. 구기정은 실재하는 자연 풍경을 3D 렌더링 기반의 디지털 이미지로 재현하여 기존의 인식에 혼란을 줌으로써 이질성을 인식할 수 있는 잠재적 균열의 순간들을 창출한다. 박고은은 나무의 미세한 움직임 데이터를 그래픽으로 재구조화하여 실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물질적인 층위를 은유한다. 서상희는 실제 식물과 가상 식물 간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공간, 이때 발생하는 틈 사이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미적 경험을 모색한다. 소수빈은 실제 식물과 인공식물을 자유자재로 이동시키는 감각적 체험 안에서 식물은 실체적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기술,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준안정적으로 변형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신승재는 식물과 사람이 서로 맞닿았을 때 식물 세포가 감지하는 미세전류 데이터를 작곡의 구성요소로 활용하며, 입체음향 시스템에서 새롭게 변주된 선율을 ‘씨앗’이라는 매체로 표방한다. 전시 안에서 한 지점에서 솟아난 생성은 다른 지점으로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점진적이고 불연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작품은 전시 안에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준안정적으로 변형가능한 존재로서 서로 다른 작품들과 하나의 앙상블로 변조되어 간다. 이때 앙상블은 작품 안에 내재하는 퍼텐셜을 일깨워 다른 차원의 관계 방식으로 나아간다. 작품은 각자의 고유한 생성과 특수한 연대기를 가지고 있기에 일관하지 않고 그 자체가 변화의 원동력을 지닌다. 그렇기에 작품이 모인 장은 안정적 평형상태가 아닌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있는 상태이다. 변화의 잠재력을 소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다른 작품들이 이루는 무도는 가히 불균형적이다. 불균형적인 에너지의 율동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적인 정동은 교차하고 머물고 응고되며 새로운 차이와 변화를 창출한다. 전시 안에서 작품 간의 내적 공명은 마치 불협화음을 상기한다. 불협에서 오는 간극과 틈은 새로운 잠재성을 발현하고 관계의 감각을 깨운다. 이 양상은 마치 다중적이고 변이적인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다. 예측할 수 없는 다양성을 품으며 서로 간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사회는 서로 근본적으로 분리된 독립된 실체들의 우주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매번 새롭게 생성되는 공간이다. 결국 모든 것은 차이에서 시작하고 차이에서 끝나며, 모든 유사성과 동일성은 그 과정의 중간 단계일 뿐이다.
기술은 기술적 본질의 고유한 원리에 따라 발생하고 진화해 나가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절하는 매체로 작동한다. 기술의 진보는 자연에서 얻은 물질의 형태 변환을 동반해왔다. 이 과정에서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며 그 속도는 점점 가속되어 왔다.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총 에너지는 변할 수 없기에, 기술의 발전이 일으키는 속도에 맞춰 자연은 변화를 일으켜왔지만 기술 진보의 가속도에 따라가지 못하여 최근 극심한 불안정성을 인간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인간은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술 발전과 자연 변화의 속도 차이를 메우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로 인하여 또 다른 환경문제가 생겨나면서 이전 시대에 없던 환경가치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기술적 대상과 인간, 자연 사이의 관계가 갖는 의미는 확장되어 옮겨간다. 서로 다른 리듬과 속도로 생성하고 진화하는 기술과 자연의 상호작용은 인간과 세계 사이에 새로운 관계 양식을 창발하고, 잠재하던 가능성을 일깨워 다른 차원의 관계 방식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방식의 소통과 정서적 공명을 이끈다. 전시는 기술과 자연의 요소가 가미되어 기술적이면서 자연적인 자기 고유의 개체성과 단일성을 지닌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술과 자연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의 영역으로서의 경계에 주목한다. 경계는 여기와 저기를 나누는 선이자 동시에 접하고 있는 면으로 그리고 간극과 틈에 의한 어떤 공간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작품은 혼종적인 구조를 띠는 사회문화적 구조 속에서 생겨나는 차이들이 존재하는 공간으로서 틈이자 간극으로 경계를 바라보며 여러 관계 사이에 위치하는 영역에 대한 사유를 표현한다.
자기 한계를 두지 않는 기술의 발전이 구축한 새로운 삶의 형식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